
가사
중환자실에 있던 아들을 면회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2번밖에 없었다. 우리가 면회시간에 맞춰 아들의 얼굴을 보며 슬퍼하는 동안 아들의 뒤통수, 등과 엉덩이, 허벅지, 발뒤꿈치는 썩어가고 있었다. 아들 몸에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도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동전만 하던 상처가 시간이 지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어째서 초기에 아무런 관리도 해주지 않았을까.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가 원망스러웠고,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나 자신에게도 분통이 터졌다. 병원을 옮겼다. 아들은 매일 수술실에 들어가 썩은 살을 도려내야 했다. 어찌나 긁어냈는지 꼬리뼈가 훤히 다 보일 정도였다. 욕창 치료 때문에 24시간을 엎드려 지내야 했는데, 엎어져서 겨우 숨만 쉬는 모습이 너무 처참하고 불쌍해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목 수술은 1~2달 만에 끝났는데 욕창치료가 1년이나 걸렸다. 여름이 되니 날씨 때문에 피고름이 많이 생겼다. 고름체크를 위해 의사들이 큰 바늘로 피부를 찔러대도 신경이 마비된 아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고름을 기계로 뽑아내고 나면 몸에 열이 올라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아파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내 몸도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은 잠시라도 앉아보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침대를 올려 주었는데 그 짧은 몇 초 만에 기립성저혈압으로 혼절을 했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혈액순환이 안 되어 피가 아래로 쏠려 실신한 것이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금방 다시 눈을 긴 했지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보호자이면서 아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온다. 아들은 자신의 눈물에 혹시나 가족들이 더 아파할까 눈물도 잘 보이지 않고 약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런 아들 앞에서 내가 먼저 무너질 수는 없었다. 유명하다는 한방병원 원장님이며 침술사를 모셔와 침도 맞아보고 몸에 좋다는 건 다 구해서 먹여보았지만, 결과는 늘 침통했다. 좋아질 거라는 기대로 시작한 재활치료도 마찬가지였다. 세상 그 어디에도 아들을 다시 걷게 할 방법은 없었다. 누구보다 건장하던 아들은 이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몸이 된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재활병원에서 퇴원해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을 눕히고 짐을 푸는데 재활원에 있을 때 아들이 준 편지가 보였다. 재활치료 중 하나였던 글씨쓰기훈련 때 받은 선물이었다. 삐뚤빼뚤 아이가 쓴 것 같지만 온 힘을 다해 써내려 간 글을 보고는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들은 꼭 좋아져 내게 효도한다고 적었는데, 나는 왜 다 포기한 사람처럼 굴었던 걸까. 나는 아버지니깐 아들을 보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 해해야 했는데. 아들이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 극적으로 나아서 꼭 걷게 만들어야 한다는 엄청난 변화를 바라는 게 아니라, 우리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해지고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하는 방법이 무얼까. 차분히 생각하니 내가 곁에서 해줄 수 있는 목록이 많이 떠올랐다. 다시는 아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아들이 즐거워하고 행복질 수 있는 일들만 떠올리자. 나는 쌓인 눈물을 천천히 닦아냈다.
크레딧
- 아티스트
- 김혁건
-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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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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