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사
사고 후 아들의 목소리가 모기소리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틈틈이 소리 내는 연습을 하곤 했었다. 그날도 요양병원 주차장에 나와 다른 환자들과 함께 소리 내는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배에 힘을 주지 못해 혼자서는 기침을 잘 못하니, 기침을 해서 가래를 뱉어 내라고 아들의 배를 눌러 주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평소에 답답해하거나 혈압이 떨어질 때 배를 눌러주면 좋아지곤 했는데, 배를 눌렀을 때 소리가 크게 나온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신기한 마음에 계속 배를 눌러보니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났다. 사고 후 의사선생님은 아들이 더는 노래를 할 수 없을 거라고 했었다. 심호흡도 크게 못하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으니, 노래를 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의 배를 누르는 순간 들었던 소리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어쩌면 아들이 다시 노래를 부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 가닥의 가능성을 발견한 아들과 나는 한 팀이 되어 노래연습을 시작했다. 내가 배를 누르고 아들은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조금 불안정했지만 연습을 하면 할수록 소리가 다듬어지면서 매끄러 워졌다. 사고 후에 아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뭔가에 매달리는 것을 처음 본 터라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 하지만 나이 탓인지 힘을 실어 배를 누르는 건 금방 힘에 부쳤고, 노래를 하는 아들의 호흡에 맞춰 배를 누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바로 배를 눌러주는 기계였다. 기계라면 지치지 않을 것이고, 아들이 원하는 타이밍에 배를 누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들과 나는 작업을 시작했다. “노를 젓는 방식으로 눌러주면 어떨까요?” 아들이 디자인이나 작동방법을 구상하면 내가 그림을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모형도 만들어 보며 설계도를 제작해 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설계도를 품에 안고 철공소를 찾았지만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다. 배를 눌러주는 기계라고 했더니 “세상에 그런 기계가 어디 있습니까. 단가가 맞지 않아 하나만 제작하는 건 힘듭니다.” …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각지의 철공소란 철공소의 문은 다 두드렸던 것 같다. 문전박대를 당해도 다시 문을 두드렸고, 충청도 사람을 만나면 충청도가 고향인 척도 해보고, 음료수를 사들고 가서 사정해보기도 했다. 마침내 내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인 어느 철공소 사장님께서 복부기계를 제작해 주기로 했다. 아들에게 달려갔다. 우리는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웃고, 또 웃었다. 그날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우여곡절 끝에 ‘복부 압력기’ 1호가 탄생했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부족한 점이 많았었다. 무게도 너무 무거웠고 배를 누를 때마다 기계에 소리가 나서 노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다시 머리를 맞대고 더 가볍고 소리도 별로 나지 않는 복부 압력기 2호를 만들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 마다 누군가 옆에서 조정해 주지 않으면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고, 때문에 노래할 때 호흡도 잘 맞지 않았다. 혼자서도 노래를 할 수 있는 로봇 장치를 만들기 위해 서울대학교 로봇융합연구센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락을 해보 았다. 그런데 선뜻 연구팀은 아들을 위해 자동시스템으로 된 복부 압력기를 제작해 주겠다고 했다. 심지어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로봇융합연구센터장 방영봉 교수님이 먼저 직접 집으로 찾아와 와주셨다. 아들에게는 세 분의 은인이 있다. 아들의 목을 수술 해 준 의사선생님과 복부 압력기를 만들어준 방영봉 교수님, 그리고 TV프로그램 <스타킹> 작가님. 이 세 분이 아니었다면 아마 아들의 새로운 삶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자동복부압력기가 완성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테스트를 위해 연구실로 향하는 아들의 들뜬 모습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새로 나온 기계를 장착해보고 성능을 테스트하고 아들의 몸에 맞춰보았다. “새로운 악기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에요.” 복부 압력기는 아들의 또 다른 목소리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단순한 기계이거나 보조도구이지만, 아들에게는 가수라는 직업을 되찾아올 수 있게 하는 엄청난 선물이었다. 아들은 복부압력기와 함께 노래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리도 많이 작고, 한 곡을 다 소화하기 힘들어했지만 지치지 않고 연습 또 연습을 했다. 어느덧 아들의 소리는 나아지는 것을 넘어, 깊은 울림과 감동이 있는 노래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스타킹> 작가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방송에 담고 싶다고 하셨다. 아들의 노래를 다시 대중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니!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을 향한 혹독한 노래 연습이 다시 이어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녹화 당일이 되었다. 사회자의 소개로 아들이 무대에 올랐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들은 차분하게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와 함께, 숨도 못 쉬고 엎드려있던 아들의 모습과 고통으로 울부짖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흘렀다. 나는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을 칭찬했다. 그 희망이 현실이 되어 지금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날 흘린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아들은 무사히 노래의 끝을 맺었다. 그리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자랑스러운 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아주 오래도록.
크레딧
- 아티스트
- 김혁건
-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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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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